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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이 가나, 단순 탈영이 아냐. 월북기도자로 붙들린 거야”일 덧글 0 | 조회 113 | 2021-06-05 17:42:15
최동민  
“짐작이 가나, 단순 탈영이 아냐. 월북기도자로 붙들린 거야”일이라꼬요? 일이라면 젊은 혈기에 족청 좀 따라다닌 거밖에 없임더. 그런데 어느날 밤에 산빨갱이들이 내려와 죄없는 그것들을 찔러 쥑이고 간 기라요. 중년에 고향을 떠난 것도 그것들이 당최 눈에 걸려서.“그년?”권기진씨는 약간 섭섭하다는 투로 말했다.“재미있습니다. 선생의 표정은. 제가 마음에 들었다 안들었다 하시는군요.”전화 확인이 있고서야 우리들은 비로소 속은 것을 알았고, 그러자 지난 열흘간의 구구한 억측과 의구들, 갖가지 정신적인 혼란이 어처구니없는 자기도취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었다.뭐? 천원?담배의 확보도 충분했다. 이미 여러번 비친 얘기지만, 감방 안에서 담배보다 더 귀중한 것도 드물다. 아예 교도소로 넘어가면 모두들 체념하고 끊으려고 애쓰지만 미결수들의 경우에는 그런 노력이 별로 없다. 미결수들은 실형을 받게 될 것이 명백한 경우에도 일단은 자기가 석방될 것이란 전제 속에 대기하기 때문이었다.그는 마침 그곳에 나타난 주지에게 물었다. 주지는 흘깃 그림을 돌아보더니 대답했다.“그래도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책도 많이 읽고.”이중위가 급작스런 부름을 받고 CP막사로 달려가니 왼팔이 날아가고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진 오십대의 남자 하나가 목발로 바닥을 땅땅 쳐가며 대대장에게 따지고 있었다. 대대장은 무척 난처한 모양이었다. 민폐는 작전 못지않게 중요한 통제관의 체크사항이었다.그렇다면 내가 진정으로 열렬하게 사랑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일생을 골몰하여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 사이 하나 둘 빠져나가고 초헌만 목상처럼 앉아 있는 병실을 힘없이 둘러본 고죽은 다시 짙은 비애와도 흡사한 회상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물론 그것은 서화였다. 이미 보아온 것처럼 그에게는 애초부터 가족이나 생활의 개념이 없었다. 소유며 축적이란 말도 그에게는 익숙한 것이 아니었고, 권력욕이나 명예욕 같은 것에 몸달아본 적도 없었다. 언뜻 보기에는 분방스럽고 다양해도 사실 그가
이문열아마도 어머니는 그 교인도 다른 사람과 혼동한 것일 테지만, 그는 왠지 거기서 어머니의 처절한 진실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초점이 흐려진 표시가 별로 없는 어머니의 두 눈도 그런 그의 느낌을 뒷받침하는것 같았다. 그러자 갑자기 그의 내부에서는 이상한 감정의 비약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만약 어머니의 이 같은 태도가 임종을 예견한 데서 온 것이라면 나도 어머니를 정직하게 돌아가실 수 있도록 해야 한다.“야 이새까, 똑바루 해. 한코 생각있으면 일이 되도록 꾸미란 말이야. 여왕처럼 떠받들어도 줄까말깐데 어디서 신라쩍 수작하고 있어?”오후가 되어 면회인이 좀 뜸해지고 다시 지리한 반성시간이 되었을 때 김광하씨가 나를 불렀다. 처음부터 내게 까닭없이 호의를 보이던 감찰부장이란 사람이었다. 자리는 감방장 다음이었지만 내가 보기에는 감방 안의 정신적인 지배자인 것 같았다. 그의 말 한마디로 엄격하기 짝이 없는 감방 안의 자리 순서가 무시되고 그 곁에 내 자리가 만들어졌다.말 마이소. 사변 전에도 지서가 두 번이나 불탔임더.그러다가 고죽에게 한 계기가 왔다. 흘러흘러 총독부의 고등문관을 아들로 둔 허참봉이란 친일주의 식객으로 있을 때였다. 어느날 참봉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대로 서화를 알아 보는 눈이 있는 참봉영감은 가끔씩 원근의 묵객들을 불러 술잔이나 대접하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었다. 잡곡밥이나 대두박도 없어 굶주리던 대동아전쟁 막바지이고 보면, 실은 술잔이나마 조촐하게 내오고 몇푼 노자라도 쥐어주는 것이 여간한 생색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친일주의라고는 해도 일찍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한 아들을 둔 덕에 일제의 남다른 비호를 받고 있다는 것뿐, 영감이 팔걷고 나서 일본 사람들을 맞아들인 것은 아니어서, 청이 들어오면 대부분의 묵객들은 기꺼이 필낭을 싸들고 왔다. 그런데 고죽이 머물고 있는 동안에 공교롭게도 운곡 선생이 찾아들었다. 고죽은 반가웠다. 그는 스승 석담 선생의 몇 안되는 지음의 하나였을 뿐만 아니라 고죽 자신도 육칠년 가까이나 그에게서 한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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